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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6-21 22:13
소니의 기적 (1)
 글쓴이 : 로보맨
조회 : 5,311   추천 : 0  




 
손때 묻은 책을 들춰보게 되면, 단순히 글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 책장 사이사이에 배어 있는 얼룩과 낙서, 그리고 누렇게 바래진 종이를 통해 그 동안 책속에 쌓여진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된다. 얼마전 그렇게 때묻은 한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역사소설도 아니고, 사상서도 아니다. 현재 3,40대의 아버지 세대, 그들이 아주 어렸을 적 부터 일생을 사는 동시대의 어떤 기업가와 기업에 관한 이야기다.

소니, 이름만으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브랜드'를 키워나가는 대표적인 기업. 1983년에 전세계에 16만명의 직원을 거느릴 수 있었던, 우리보다 앞서서 세계의 기업으로 자리잡은 소니의 공동창립자이자 1976년 1월 소니 회장 겸 경영최고 책임자의 자리에 오른 "모리타 아키오"의 '성공시대'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책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시작하기전에 이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MC매니아]들에게 필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라는 시대적인 상황과 기술개발의 필요성. 그리고 그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우리 메카트로닉스 매니아들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좋은 안내서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이책은 1986년 10월 일본에서 발행된 'Made in Japan'의 번역서로 우리나라에서는 '소니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1986년 11월 25일 기린사에서 발간되었다.
  
'소니의 기적'

1921년 1월 26일, '모리타 아키오'는 나고야에서 모리타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모리타 가문은 3백년 동안 나고야 근처의 코스가야에서 '네노히마쯔'라는 상표의 정종을 만들어온 명망있는 지역의 유지였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을 받아 열살쯤 되는 어린나이 부터 아버지에게(후계자 양성을 위한) 사업, 경영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게 된다.

풍족한 생활 여건 덕분에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축음기 등과 같은 당시로는 귀한 물건을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외국 생활의 경험이 있는 주변 친척들의 이야기를 통해 넓은 세계에 대한 스케일을 키워나가게 된다. 특히, 아버지가 거액의 돈을 들여 구입한 축음기를 통해 들었던 소리에 매료되어 기술적인 호기심을 싹트여 나가기 시작했다.

라디오 키트를 사다가 직접 조립하는 것을 물론, 외국의 전문적인 서적을 구독할 정도로 점점 전자공학에 심취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형편없는 학교 성적을 보이기도 했다. (이점, 누구나 한번쯤은 그랬던 기억이.. ^^;)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자연과학부(우리나라로 하면 과학고등학교정도..)에 진학하고자 결심하고 1년간 재수끝에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 진학 후에도 언제나 관심이 많았고 열심이었던 물리학을 전공과목으로 선택했다. 결국 오사카의 제국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1940년대 초, 태평양 전쟁의 와중에 군입대를 해야 할 상황이 되었다. 다행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해군장교를 통해 직접전선에 나가지 않고 연구를 하면서 군생활을 할 수 있는 해군 장교로 임관하게 된다. 1945년 초, 전쟁의 막바지에 연구를 중단하고 군수공장에 차출 되어 비행기부품을 깍는 일을 하게 된다. 이때 장차 배우자가 될 가메이 요시코를 만나게 된다.

몇 달뒤 대위로 임관하고 작은 어촌에서 몇명의 연구원들과 함께 사이드와인더(열추적로켓)개발과 같은 군대에 필요한 연구를 계속했다. 훗날 소니의 공동창업자 이부카 마사루를 만나게 된 것이 이시기이다. 이부카는 그당시 자신의 회사를 가지고 있는 민간인 전기기술자였다.1945년 8월 14일. 집에서 휴가를 보내던 모리타는 종전을 알리는 라디오 뉴스를 듣는다.

전쟁이 끝난 후, 잠시 교사직을 수행하면서 이부카를 다시만나게 된다. 이부카는 뛰어난 기술력과 고위직 친척을 통한 정보력으로 자신의 사업을 진행시키고 있었으나, 전쟁이 끝난 직후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모든 것이 힘든 상황이었다. 전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중에 사업적으로 돈이 될 만한 아이템, 이를 테면 나무통에 나선형 전극을 붙인 전기밥솥이라던가 전기 방석 등을 만들어 팔았으나 이부카는 그것에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이부카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존의 AM라디오에 간단히 붙이면 단파수신기가 되는 장치를 만들게 된다. 이를 계기로 모리타가 사업에 동참을 결심하게 되고, 모리타, 이부카, 그리고 이부카의 친척인 전 문무대신 마에다와 함께 모리타의 아버지를 찾아가 모리타가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허락을 받고 또 얼마간의 투자를 받게 된다.
 
도쿄로 돌아온 그들은 도쿄 중심가에 자리잡은 한 백화점의 불에 탄 건물에 자본금 500달러인 도쿄 통신공업을 설립한다. 독창적인 방법으로 고도의 새로운 기술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회사)컨셉 하에 이부카와 모리타는 전쟁전 시장에 있던 제품의 단순한 고급화가 아닌 전혀 새로운 제품의 소비제품인 와이어 녹음기(철사줄로 녹음재생이 가능한 녹음기)로 결정한다.

때마침 도쿄통신공사는 열악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NHK의 장비 입찰에 당첨되어 방송국에 완벽한 장치를 만들어 납품하고 기술력을 인정받게 된다. 이부카는 장비 설치때 방송국에서 미국제 윌콕스게이 테이프 녹음기를 처음보게 되고, 와이어 녹음기 보다 훨씬 진화된 테이프 녹음기를 만들 것을 결심하게 된다.

테이프 녹음기 제작을 위한 첫번째 과제인 테이프의 제작은 셀로판을 1/4인치 길게 잘라서 그 위에 여러가지 실험 물질을 입히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많은 실험과 노력끝에 산화 제2철을 바른 테이프를 가지고 실험에 성공할 수 있었다.

1950년, 무게 35킬로에 17만엔, 현 우리나라 화폐가치로 3천5백만원 정도 되는 완벽한 메카니즘을 가진 녹음장치를 테이프와 함께 미래의 가치와 기대만으로 50대나 제작하게 된다.  그들은 세일 경험이 없는 기술자였다. 단지 성공에 대한 커다란 꿈을 갖고 있었고,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면 분명히 큰 재산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리타는 제품의 판매를 위해 많은 시람들을 찾아다니며 제품을 소개하었으나  결과는 아무도 그것을 사려하지 않았다. 독창적인 기술과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사업을 번창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제품의 가치를 알고 필요로 하는 곳으로 눈을 돌려 당시 재판소에 속기보조 용도로 20대를 판매하였다. 또한 어학용으로 학교에 판매를 하기 시작했으며, 이후에는 기술의 개발과 실용성을 중점으로 여행가방 크기의 좀더 작고 편리한 녹음기를 개발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한 개인이 성장기를 거쳐 사업가로써의 첫발을 내딛는 과정이었다. 유복한 집안환경과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번뜩이는 아이디어, 그래고 전쟁이라는 최악의 또는 최고의 기회가 맞아 떨어졌기때문에 사업적이 쉽게 이루어졌다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소니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와 모리타의 소니를 경영하는 경영철학은 다음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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