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맨 > 로봇컬럼 > robo_컬럼

robo_컬럼
 
함께  만들어가는 로봇 게시판입니다.  게시판의 주제에 맞게 올려주세요..
 
 

 

작성일 : 09-06-23 00:10
[컬럼] 소니의 기적 (2)
 글쓴이 : 로보맨
조회 : 6,106   추천 : 0  
. .



 
녹음기 개발의 성공과 사업이 확장되어 나감에 따라 소니는 작은 휴대용 녹음기 개발을 시작하게 된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1948년 벨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에서 발명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획기적인 발명품에 소니의 공동창업자인 이부카와 모리타는 제품에 응용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일년뒤 일본내 특허 사용권을 취득하게 된다.

그때까지도 일반 제품에 대한 트랜지스터의 응용은 보청기가 전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소니는 뜨겁고 수명이 짧은 진공관 대신에 하이파이(고충실도)가 가능한 저전력 소형라디오를 개발하기 위해 높은 주파수 전달이 가능한 트랜지스터를 발명하기 시작했다.

결국 트랜지스터가 개발되고 많은 부품들이 새롭게 만들어져 1955년, 첫번째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생산되었다. 1957년부터는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크기의 소형트랜지스터라디오가 개발되었다. 이후 사업이 점점 더 번창하여 1958년 소니코퍼레이션으로 회사명을 개명하고 그해 12월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하게 된다. 1960년 2월 자본금 50만 달러로 소니아메라카를 설립하고 뉴욕에 대형 지사를 설치, 판매에 나서기 시작했고 70년에는 뉴욕증시에 상장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과정은 모리타 아키오의 자서전 '소니의 기적'의 책 중반부까지 기록된 소니의 창설과 성장과정에 대한 내용을 소개해본 것이다. 이후로 자서전에는 모리타의 가족사라던가 소니의 인물들, 그리고 거함 소니를 경영하는 방법 및 철학, 미국과 일본의 경영, 세계무역에 대한 견해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2003년 지금, 소니는 세계 최고의 경제시장인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에 소니 스타일과 브랜드를 제품과 함께 판매하고 있다. 트랜지스터라디오, 트랜지스터 TV, 스테레오 녹음기, 워크맨, 워치맨, 디스크맨, 유메틱, 베타, 플로피디스크, 컴팩트디스크, 트리니트론,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 소형 VTR, 마비카, 8mm 디지탈카메라, 6mm디지탈카메라, 플레이스테이션 등등... 수 많은 제품과 발명품들이 소니에 의해 탄생되었다. 소니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대표적인 소니의 성공요인을 살펴보자.

소니의 성공시대(1) - 워크맨

'난 음악을 듣고 싶기는 한데, 그것 때문에 다른 일을 안 할 수는 없거든. 하루 종일 녹음기 옆에만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까 말일세. 음악을 항상 가지고 다녔으면 좋겠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무겁고...' 동업자 이부카의 이 한마디가 워크맨의 탄생을 낳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녹음기능이 없는 녹음기를 과연 사람들이 구매할까에 대한 반대여론에도 불구 하고 소형 헤드폰과 소형플레이어가 개발되었다.

워크맨은 1998년까지 1억6000여만대가 팔리는 대히트상품이 되었으며, 30여개국에서 300여종에 달하는 헤드폰 스테레오는 전세계적으로 매년 4000만대(소니 워크맨 250만대)나 팔려 나가고 있다. '워크맨'은 영국의 대표적인 사전 '옥스포드잉글리시'에도 실리게 됐고, 전세계인에게 '전자제품은  일본'이라는 강한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포천지는 99년 4월 모리타의 워크맨을 '역사상 가장 뛰어난  경영상 결정 75선' 중 26위로, 타임은 8월 '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20인'으로 선정하였다.

'우리가 사전에 아무리 시장조사를 했다 하더라도 새 상품 '워크맨'이 이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결론이 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며, 많은 모조품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 것이라는 것도 예측할 수 없었을 것이다.' - 모리타 아키오.

소니의 성공시대(2) - 특허

소니는 녹음기술에 꼭필요한 고주파 AC바이어스시스템에 대한 특허권을 NEC로 부터 절반을 샀다. 전세계에 특허권에 대한 소유주장의 메시지를 보냈을때 별 관심을 얻지못했었다. 얼마후 한 무역회사가 미국의 테잎녹음기를 수입했을때 판매금지소송을 냈고 결국 승소판결을 얻어낸다.

이후 국내에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특허료를 받음은 물론 미국에 판매되는 소니의 제품은 특허료를 내지않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사업을 함에 있어서 특허의 중요성은 날로 증가되어 왔다. 특허를 위한 특허가 난립하고는 있지만 본격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특허에 대한 인식과 현명한 대처가 절실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니는 주 사업분야인 녹음기기에 대해 확실한 발판을 다져감에 있어서 특허권이 큰 발판이 되었다.

소니의 성공시대(3) - SONY라는 브랜드

″브랜드는 기업의 생명과 같은 것이고 상표나 회사명은 단순하게 고안해낸 것이 아니라 기업의 책임감이 깃들여 있다″ 소니는 46년 설립된 도쿄무선통신공업주식회사가 원래 이름이지만 세계에 진출하는 데에 상표와 이름이 걸림돌이 되자 53년부터 모리타 회장이 직접 ′소리′란 뜻의 라틴어인 소너스(Sonus)와 영리하고 말잘듣는 아이라는 (sonny-boy)에서 따온 ′소니(SONY)′로 바꾸었다. 현재까지도 이를 회사이름겸 로고로 사용하고 있으며 'SONY'의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서 철저한 관리를 해오고 있다.

브랜드를 지키고자하는 신념을 보여주는 일화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판매하던 초기에, 소니가 생산하는 트랜지스터 라디오 10만 개를 스위스의 유명 시계업체인 불로바의 이름으로 납품하라는 조건을 거절했는데, 당시 이 주문량은 소니 총자본의 몇 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것이었다. 소니라는 브랜드를 눈앞에 있는 경제적 이득보다도 중요시한 이와 같은 경영주의 의사결정이 결국 40년이 지난 지금 소니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다.

소니의 성공시대(4) - 실력제일과 기업문화

모리타는 철저하게 학력보다는 실력을 중요시하였다. 유연한 사고와 끊임없는 도전 정신을 갖춘 사람이 인재라고 생각한 그는 인사 제도에 있어서 학력불문의 원칙을 세우고 또, 불경기에도 종업원을 해고하지 않는 공동체적 인사 원칙을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 현지 법인에도 적용하고 있다.

신제품과 신기술을 중시하는 소니는 최고 경영자에서부터 말단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구성원 모두의 작은 아이디어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16만여명에 이르는 소니 종업원들은 자신의 사소한 아이디어는 물론 주위의 소비자들로부터 듣는 불편사항이나 아이디어를 모두 연구개발팀으로 넘겨 제품개발에 반영하고 있다.

모리타와 이부카의 회사창업취지서에는 " 많은 사람들이 굳건한 단결력으로 결합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고, 그들의 끓어오르는 욕구를 기술적인 역량으로 표출할 수만 있다면, 그런 조직체가 맛볼 수 있는 기쁨과 이윤은 실로 막대할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또, 모리타 회장은 ‘일본인이든 외국인이든 결국 똑같은 인간이다. 일본에서 통하는 원칙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게 마련’ 이라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경영철학은 세계 곳곳에서 퍼져 있는 소니현지법인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소니의 성공시대(5) - 글로벌기업

소니는 특이하게도 일본내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에 진출한 여느 일본기업과는 달리 해외에서 먼저 성공한 케이스를 가진 회사다. 이는 항상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세계 각국 소비자의 신뢰를 얻어간 개척자 정신과 글로벌 전략에 힘입은 것이다.

소니의 글로벌 전략은 “지구적 시야를 가지고 지역에 밀착하자”(`Global Localization')는 모리타 경영방침이다.  소니의 글로벌 전략은 기술, 제품 컨셉트, 브랜드를 세계적으로 통일함으로써 규모의 경제성을 추구하면서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소비자의 니즈에 세밀하게 대응하는 전략이다. 소니는 해외거점의 현지화를 위해 현지인을 최고경영진으로 발탁하고 조직관리도 현지의 근로관행 등 현지사정을 존중해 현지인에게 맞기고 있다. 그 결과 97 회계연도 총매출액(511억달러) 가운데 해외비중이 무려 73%를 차지한것을 볼 수 있다.

미래를 바꾼다.

소니를 일으킨 모리타는 세계일본의 전후 경제부흥의 상징적 인물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무장관 등 미국내 유력인사들과 두터운 교분을 나누었으며, 미일간 무역마찰이 심했을 당시 양국간의 막후 채널로 조정역을 맡기도 했었다. 1993년 테니스를 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94년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하와이 요양중 병세 악화로 99년 8월 도쿄왔으나 폐렴으로 사망한다.  

한명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의지가 기업에 반영되고 그 기업이 세계를 움직이는 모습을 '소니의 기적'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메카트로닉스, 로봇의 시대를 열어갈 의지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젋은 이들에게 소니와 소니의 창시자 모리타가 보여준 모습은 많은 교훈을 안겨주리라 생각된다.

'소비자들은 10년이나 20년 후에 무엇을 필요로 할까? 나는 바로 이것이 최고 경영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술적 규범을 고려해야 하는가 등과 같은 기술의 미래의 방향을 알아야한다. 이러한 종류의 생각과 연구가 결과적으로 이익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 모리타 아키오 '소니의 기적' 중

모리타 아키오의 8가지 경영 원칙

1.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기본 원칙으로 승부하라.
2. 국제적인 기업이 되려면 철저한 현지화를 추구하라.
3. 학력은 소용없다. 실력 있는 사원을 채용하라.
4. 아무도 하지 않은 것을 하라.
5. 자신 있는 분야에서 경쟁하라.
6. 세계적으로 통하는 브랜드를 창조하라.
7. 기술은 국경을 초월한다. 고품질로 승부하라.
8. 소비자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라.  

참고. '소니의기적', 관련기사 검색
[이 게시물은 로보맨님에 의해 2013-09-14 22:24:41 robo_컬럼&탐방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로보맨님에 의해 2013-09-14 22:51:14 리뷰에서 이동 됨]